우성 김종영
又誠 金鐘瑛
KIM CHONG YUNG

삶이 곧 예술이고, 예술이 곧 삶이었던
한국현대조각의 거장

우성 김종영은 서구에서 유래한 모더니즘 조각을 한국적인 정서와 감성 그리고 정신성으로 해석하고 고유의 현대성을 이룩했던 예술가이다. 혼탁한 시대에도 고고한 선비와 같은 작가로 또한 교육자로 헌신하였던 그의 삶과 예술은 20세기 한국 현대조각사에 큰 발자취를 남기고 있다.
Woosung(pen name) Kim Chong Yung 1915 -1982

작가소개

우성又誠 김종영 金鐘瑛 | KIM CHONG YUNG |
김종영은 한국현대추상조각의 선구자로 일컬어지는 조각가이자 교육자이며 또한 동양과 서양의 정신문화를 고루 섭렵하고 세계에 대한 통찰을 예술의 목표로 삼아 이를 조형화한 작가이다. 그의 예술세계는 인생, 예술, 사랑이라는 이념아래 꽃피운 초월과 절대를 향한 탐구였으며 지금도 그의 많은 후학들이 큰 스승을 본받아 창작과 교육의 길에 매진하고 있다.


연보

1915-1935
출생-21세
우성 김종영은 1915년 6월 26일 경남 창원에서 영남 사대부 가문인 김해 김씨 22대 손인 성재 誠齋 김기호金基縞와 이정실李井實 의 오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향리에서 보통학교를 마친 김종영은 서울로 유학하여, 1930년부터 35년까지 민족사학 휘문고등보통학교를 다녔다. 이 시기에 그는 훗날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의 초대학장을 역임한 장발을 은사로 만나는 인연을 맺는다. 휘문고보 재학 중이던 1932년에는 동아일보에서 주최한 <제3회 전조선남녀학생작품전람회>에서 안진경체로 일등상을 받으며 예술적 소질을 인정받았다. 서동진, 윤희순, 오지호, 이마동 같은 한국근대미술사의 선구자를 배출한 휘문고보에서 예술가의 꿈을 키워나간 김종영은, 1936년 3월 은사였던 장발의 권유로 일본 동경미술학교 조각과 소조부에 입학해 본격적인 조각가의 길로 들어선다.
1936-1947
22세-33세
김종영은 1936년 동경미술학교 조각부에 입학하여 1941년 졸업하였다. 유학 중에는 일어로 번역된 서양의 고전을 탐독하고, 화집을 통해 접하게 된 부르델Emile Antoine Bourdelle과 마이욜Aristide Maillol, 브랑쿠시Constantine Brancusi같은 서구의 현대 조각가들에게서 깊은 감명을 받는다. 1941년 부친의 별세 및 이효영 여사와의 결혼으로 귀국한 김종영은 태평양전쟁과 해방의 혼란한 시대를 맞아 긴 기간을 고향에서 칩거하며 부인과 가족을 모델로 한 작품을 계속해 나간다.
1948-1959
34세-45세
1948년 은사 장발선생의 권유로 서울대학교 조소과에 부임한 김종영은 6.25전쟁 중에도 부산 송도에 마련된 교사에서 수업을 지속하며 제자들과 운명을 같이한다.
1953년에는 허버트 리드Herbert Read가 주관하여 영국 테이트 갤러리에서 주최한 『무명정치수를 위한 모뉴멘트』 국제공모전에 출품하여,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해외 공모전에 입선하는 쾌거를 올린다. 이후, 김종영은 구상적인 인체조각에서 나아가 자연을 소재로 한 추상조각을 본격적으로 시도하였다. 같은 해 제 2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 출품된 목조 추상조각인 <새>는 이러한 변화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또한 1958년에는 경북 포항에 전쟁으로 희생된 젊은이들의 넋을 위로하는 <전몰학도충혼탑>을 제작한다.
1960-1969
46세-55세
김종영의 기념조각은 2점에 불과하지만, 1963년 국민성금을 모아 파고다 공원에 건립한 <3.1독립선언기념탑>은 기념조각의 기념비로 평가받는 걸작이다. 그러나 <3.1 독립선언기념탑>은 1979년 공원재정비라는 불합리한 이유로 철거되어 방치되는 수난을 겪은 끝에 1991년 서대문독립공원에 복원되었다.
지천명知天命: 50세에 접어든 김종영은 지금까지의 제작생활은 실험과정이었다고 돌이켜 말하며 조형의 본질과 형태의 의미를 종합적으로 추구하겠다는 의지아래, 1968년부터 69년까지 유네스코의 초청으로 파리와 로마의 미술을 시찰한 이후에는 서양미술의 절대적 미를 동양의 서체적 조형미와 결합시킨 유기적이고도 기하학적인 세계로 나아간다.
1970-1982
56세-68세 작고
1970년대는 가장 많은 작품을 제작한 시기였다. 당시 삼선동 자택 마당에 마련된 작업실에 밤낮을 가리지 않고 작품제작에 혼신을 쏟았던 김종영의 모습을 가족들은 ‘정성으로 만든 작품을 쓰다듬는 선생의 모습이 자식을 대하는 듯한 자애로운 모습이었다’고 회고한다.
1974년에는 한국현대미술의 발전과 후학양성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국민훈장 동백장이 서훈되었고, 1976년에는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으로 선출된다. 그리고 1980년에는 예술생애를 총괄하는 대규모 회고전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개최하였다. 이 전시를 기념하여 제자 최종태의 주도로 그간의 대표작을 모은 최초의 작품집을 문예원에서 발간한다.
그러나 1981년 급작스런 암의 발병으로 인해, 1년여 간을 투병하던 김종영은 안타깝게도 1982년 12월 15일 68세의 일기로 생을 마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