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과 인체
김종영의 남아있는 드로잉들 중 많은 수가 가족과 인물들을 소재로 한 인체를 담고 있다. 조각가에게 필수적인 해부학적 지식이 녹아든 그림들에서 부터 주변의 인물들, 그리고 애정과 정성이 담긴 가족의 초상들까지 그의 작품 전반에 걸친 인간에 대한 관심을 엿볼 수 있다. 그의 인체 드로잉들은 먹과 붓을 이용한 크로키이건 소묘에 가까운 섬세한 묘사이건 상관없이 한점 한점마다 원숙한 예술가의 작품성을 확인해 볼 수 있는 소중한 자료들이다.

자화상
"김종영선생은 수많은 소묘 작업을 하였지만 80점 가까운 자화상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서 나는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연필, 먹그림 등 김종영 특유의 유창한 필법으로 젊었을 적 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의 참으로 놀라운 인생의 속도를 보여주고 있다. 김종영선생이 왜 그토록 끊임없이 자기 얼굴을 그렸을까 하는 것은 소묘의 예술성과 더불어 많은 이들의 연구의 대상이 될 것이다" - 김종영미술관장 최종태 <김종영의 자화상 2003> 도록에서 전재

풍경
김종영의 삶과 예술에 대한 고고한 정신과 인본주의적 태도는 유년기부터 지속적으로 수련하였던 한학과 서예에서 그 근원을 찾을 수 있다. 서예의 경우 주로 장자(莊子)의 대종사(大宗師)와 노자(老子) 도덕경의 일부, 그리고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가 말하였던 금강안(金剛眼)에 대한 구절을 즐겨 쓰셨는데 유희삼매 불각도인(遺戱三昧 不覺道人)의 경지를 추구하였던 김종영의 예술철학의 뿌리를 반영한다. 그가 남긴 서예와 수묵을 위주로 한 풍경화 및 사군자를 닮은 화훼그림들은 20세기 현대미술이 거둔 또 하나의 성취이다.

조각과 밑그림
김종영의 스케치북에 담겨있는 드로잉은 구체적인 작품을 위한 밑그림으로서의 에스키스 순수한 소묘나 스케치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소묘나 스케치는 인물드로잉, 풍경드로잉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이들 드로잉은 구체적인 작품을 위한 초벌단계라기 보다 그 자체로 독립되는 것들이다.
김종영의 드로잉은 40년대부터 시작되는데 40, 50년대가 주로 주변인물을 드로잉한 것, 주변 풍경을 드로잉한 것이 다수를 이루고 있는 반면, 60년대 이후는 작품을 위한 초벌단계와 퇴고과정으로서 에스키스가 상회됨을 엿볼 수 있다. 이와 같은 변화의 추이는 인물 중심의 조각에서 점차 추상으로의 진입과 연관되는 것으로 파악된다. - 오광수 <김종영: 조각과 그 밑그림> 2003 에서 전재.

유화
현재 남아있는 유화는 주로 청년시절에 그린 작품들이나, 1950년대의 입체파적인 화풍을 보여주는 추상작품과 인물화 외 1960-70년대에 걸쳐 간헐적으로 제작된 풍경화 몇 점이 남아있다.
휘문고보 재학시절에 그린 인상주의풍의 풍경화들은 당시 휘문고보 미술부의 학생들이 대부분 공유했던 화풍이었으나, 구도나 사물에서 나타난 입방체적인 표현에서 이후 김종영 선생의 조각과도 연계되는 조형의식이 엿보인다.
드로잉과 전통서화에 비해서는 많지 않으나, 조각을 통해서는 표현하기 어려운 색채와 평면구성에 대한 선생의 예술적 면모를 읽어내기에 손색이 없는 작품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