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종영은 일생을 처사(處士)로 사신 그의 부친이 학예에 능하고 서예에 능했다고 기억한다. 김종영미술관이 소장한 김종영의 편지를 통해 부친은 김종영이 동경에서 서양 조각을 공부할 때도 그에게 서예를 지도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1932년 김종영이 서예작품으로 동아일보사에서 주최한 『제3회전조선학생작품전람회』에서 전국장원을 했을 때, 심사위원들이 그의 작품을 보고 실제로 그가 쓴 것이 맞는지 자신들 앞에서 다시 써보라고 했다던 일화가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김종영의 서예 실력이 매우 뛰어났음을 충분히 짐작해볼수 있다. 그리고 당시 동아일보에 게재된 김종영의 수상소감을 통해서는 장원을 하기까지 부친의 지도가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김종영은 생전에 추사 선생의『완당집고첩』에 있는 <유희삼매>를 즐겨 감상하였다. 추사의 서예를 통찰하고 있었기에 그는「완당과 세잔느」라는 전대미문의 글을 쓸 수 있었다.

    이처럼 서예를 통해 갖춘 필력은 그의 드로잉 작품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특히 전통 서화에 대한 깊은 통찰을 토대로 서구미술을 대등한 입장에서 비교성찰하여 ‘불각(不刻)’의 미학을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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